니망지리성결교회(泥望只里聖潔敎會) 니망지리성결교회(함경남도 북청군 덕성면 니망지리 678)는 북청교회 신도들이 전도대를 조직하여 4방 30리 이내로 돌아다니며 각촌(各村)에 전도하였는데 그 결과 북청교회 지교회로 설립되었다.
니망지리교회는 1923년 남녀 8∼9명의 신자로서 설립되었으나 예배당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신도들은 한마음으로 이 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김형식 전도사의 특별한 열심과 목회사역으로 말미암아 신자가 점점 증가됨에 따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 1928년 12월에 5간 1동과 대지 80여 평을 230원(100원은 김형식 전도사, 50원은 웃-쓰, 그 나머지는 본 교회 신자의 헌금과 다른 교회 신자의 보조금)에 매수하였다.
12월 15일∼17일까지 김응조 목사와 주순진 전도사를 청하여 밤마다 전도회를 열었는데 밤마다 60∼70명씩의 청중이 모였으며 결심자는 24인이었다.
17일 오전 12시에는 김응조 목사의 사회로 리문현 전도사의 설교 후 헌당식을 거행하였는데 400여 명의 대중이 모여서 주께 영광을 돌렸으며 교회 경종을 구입하기 위해 25원의 헌금을 드렸다.
김진문 전도사는 제9회 함흥지방회에서 1931말 현재 “니망지리교회는 여름 이후로 집회 열 왕성, 예배당 수선, 신자증가 중에 있음(신자 20여 인됨)”을 보고하였다. 1932년 5월 신유의 이적이 나타나 사귀병자 2인이 완쾌되었다.
니망지리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양천성결교회(楊川聖潔敎會) 양천성결교회(함경남도 북청군 양천면 중리 1377) 역시 북청교회 신도들의 열심 전도결과, 1929년 5월 평가 4간과 대지 60평을 매수하여 기쁨으로 예배를 드렸다.
10월에는 감리목사의 순회기를 이용하여 전도회를 열고 300∼400명의 대중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동시에 한 형제에게 학습예식을 진행하였다.
1930년에는 ‘반종교파(反宗敎波)’에게 다소간 방해를 받는 일이 있었으나 김철진(金喆鎭) 같은 형제가 있어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버티고 나가는 있는데, 형제는 그 지역 청년회원으로서 신앙의 관계로 인해 제명처분을 당하고 축출되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저들에게 “너희 회(모임)에서는 나의 이름이 제명되었으나 하늘나라 생명록에는 제명되지 않았으니 무한히 기쁜 일이다.”라고 간증하였다.
1931년 1월 29일∼2월 1일까지 강송수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는데 큰 은혜가 각 개인에게 임하는 동시에 네 가정이 은혜를 받았으며 어떤 부부 두 사람과 형제 두 사람은 제사 문제로 인해 가정에서 축출을 당하게 되었으나 이번에 받은바 은혜로 말미암아 그 시험과 핍박을 넉넉히 이기는 동시에 부모가 쓰라고 준 ‘백미 두 말’까지 교회에 바쳤으며, 마지막 시간에는 세례식(3인)과 직원 임명식이 있었다.
양천교회는 설립 이후 ‘북청교회 순회지’로 있었으나 1931년부터는 ‘평산교회의 순회지’가 되었다.
김진문 전도사는 1931년 말 당시 양천교회에 대해 1932년 ‘제9회 함흥지방회기’에서 “신자들의 신앙독실, 리순식 씨의 열심, 신유의 역사도 있음, 재미있는 중에 전진함.”이라고 보고하였다.
양천교회는 아름다운 새 예배당을 얻어 1932년 8월 30일 헌당식을 거행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고, 3일간 주영식 전도사의 인도하에서 전도회를 열고 많은 결심자를 얻었다.
양천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