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평성결교회(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 간평리 315)는 1923년 5월경에 김룡교 씨의 신앙생활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1924년 8월에 4명의 구도자를 얻게 되자, 1922년 9월에 설립된 어포리교회 전도대가 두 번에 걸친 대대적인 전도활동을 벌인 결과 50여 명의 결심자를 얻어 마침내 어포리교회 지회로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1924년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교역자 임명기’에는 ‘간평교회’에 관한 기록이 없다. ‘간평교회’라는 말이 교역자 임명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928년 ‘제5회 년회 임명기’이다.
이 자료에는 어포리교회의 ‘순회지 간평’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목회자는 어포리교회와 예원리교회를 담임하는 주무진 전도사가 ‘간평 순회지’ 목회자로 임명되어 있다.
간평교회는 신자 중 전가귀도 한 김희은 씨의 협착한 가택(家宅)을 임시 예배장소로 정하고 60~70여 명씩 모여 예배를 드렸다.
신자들은 5주간 자발적으로 새벽마다 청신기도회를 시작하여 간절히 한 마음으로 기도한 결과 성신의 역사로 흉악한 죄를 통회자복하고 신생의 은혜를 받은 자가 9인이나 되며, 이때부터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2월 2일〜5일까지 곽재근 목사를 청하여 특별집회를 열었는데 장소의 협착으로 곤란 막심이었으나 성신의 역사로 모든 죄를 통회자복하고 신생의 은혜를 받은 자가 4인이며 또한 모든 신자들이 전도의 열매를 받아 피차 열심히 전도하는 가운데 주께 영광을 돌렸다.
1929년 8월 18일에는 ‘북청군 예원리교회’에서, 어포리교회와 간평교회가 연합하여 강송수 목사의 주례 하에 8인에게 세례식과 6인에게 학습예식과 겸하여 성찬예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특별히 간평교회에서는 대거전도회를 개최하였는데 동리(同里)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출석하여 주의 복음을 듣고 믿기로 결심한 자가 21명이나 되는 중 교회에 계속 출석하여 구원을 요구하는 자도 많이 있음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1930년 1월 22일〜25일까지 김진문 전도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개최하였는데 일반이 성신의 역사 가운데 많은 은혜를 받고 주께 감사하는 동시에 성전 건축헌금으로 74원 80전이 나왔으므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를 드렸다.
2월 14일 낮에는 김현식 전도사를 청하여 전도회를 개최하고 남녀 1백수십여 명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자원하여 믿기로 결심한 자가 28명에 달하였다.
1931년 2월 6일〜8일까지 강송수 목사의 인도하에서 부흥회를 열고 일반이 큰 은혜를 받는 중 중생자 4인 신결심자 18인을 얻고, 이번 집회 중에 학습예식과 ‘사무년회’까지 있었으며, 7일에는 337원의 성도들의 헌금으로 82평의 대지에 와가 2동 5간을 아름답게 건축한 ‘신축예배당 봉헌식’을 거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1월 28일〜12월 1일 아침까지 강송수·김경흡·박현이 제씨를 청하여 대거전도회를 열고 매일 3차씩 회집하여 큰 은혜를 받는 동시에 신 구도자 13인을 얻었다. 김진문 전도사는 제9회 함흥지방회에서 신자의 수가 20인임을 보고하였다.
1932년 2월 17일 밤〜20일 새벽까지 강송수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이 집회의 결과 중생자가 9인, 성결자 6인, 무기기도 작정자가 9인, 성경읽기 작정자가 9인, 전도 작정자가 8인, 헌신 작정자가 11인, 헌금 작정자가 8인, 십일조 작정자가 1인이었다.
1933년 1월 10일 김진문 전도사의 뒤를 이어 박태주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간평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