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성결교회(함경북도 청진부 신암동 93)는 1927년 3월에 열린 제7회 년회에서 함경북도 청진에 교회를 신설하기로 작정하고 북청읍교회에서 사역하던 이정원 전도사를 파송하여 5월 첫 주일부터 예배를 드렸다.
1928년, 예배당이 없어서 이집 저집 옮겨가면서 예배를 드려오던 차에 ‘조창세·신상근’ 양씨의 노력으로 임시예배당을 건축하여 교회에 빌려줌으로 예배드리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1929년 5월 5일(주일)에 제2주년기념예배를 가까운 산 위에서 장·유년이 연합하여 400여 명이 모여 성대히 드렸으며, 남·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시장과 로방에서 열심히 전도할 것과 인근 각처에 지회를 열고 순회하는 등 구령사업에 힘썼다.
청진부내를 4구역으로 나누어 매 금요일마다 4개 처소에서 구역예배로 모여 동일한 시간에 찬미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6월 30일 오후에는 최석모 목사의 집례로 21인에게 ‘포항동 산곡’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에서 침례를 베풀어 주께 영광을 돌리고 동시에 성찬예식까지 거행하였다.
1930년 청진교회는 70여명 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임시예배당에 200여 명씩 모임으로 예배를 드리러 왔다가 도로 돌아가는 이가 많음으로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큰 예배당을 달라고 주야로 부르짖는 중, 하나님께서 미국에 있는 노(老) 성도의 마음을 감화시켜 거금을 기부케 하시고 또한 신자가 열심 헌금한 결과 총액4,448원의 거액으로 청진부 신암동 중심에 대지 190평을 매수했다. 3월 26일에 건축공사를 착수하여 6월 20일에 2층으로 우뚝 솟은 큰 예배당을 준공하고, 10월 19일에 ‘신축예배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청진교회 신자 최관영·박순길·리해봉·리복찰 네 형제는 성신의 지시를 받고 청진에서 10리 떨어진 ‘서수라’라는 동리에 가서 300여 명의 동민을 노방에 모아놓고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고 9월 21일(주일)에 동교회 신자 50여 명이 출동하여 그 동리를 1순하며 교회창립을 선언한 후, 높은 산 밑에 군중을 소집하여 놓고 창립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결신자 21인을 얻었다.
1933년 6월 7일부터 6일간 새로 부임한 김영범 목사의 인도 하에 부흥회를 열고 신자들이 풍성한 은혜를 받는 동시에 대대적인 노방전도를 위해 헌금하여 대고·나팔·단빠링·큰 나팔 등의 악기를 구입하였다.
1934년 3월 20〜25일 정남수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는데 본 교회뿐만 아니라 청진부내 교계에 일대부흥이 일어났다.
1937년 예배당이 협착하여 교우들이 1개월간 청신기도회로 모여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박용택 형제가 100원을 증축헌금으로 드린 것을 계기로 신자들 모두가 헌금한 것이 2,076원이나 되어 27평의 증축공사와 예배당 출입 통로를 확장하였다.
1939년 7월 청진 중앙 발전도시인 ‘수남동 지교회’를 개척하고 수일간 전도한 결과 결심자 40여명을 얻었다. 7월 9일 밤부터 4일간 신암동 중앙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리성봉 목사를 청하여 심령부흥회를 개최하고 매일 세 번씩 모였는데 낮 집회에는 3백여 명, 밤에는 4천여 명씩 모였다.
1941년 9월 장원초 목사가 부임하여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 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청진성결교회는 1945년 해방과 함께 교회를 재건하였다.
1947년 10월, 이용선 목사는 “서선보다 더 탄압이 심하나 교회는 대개 다시 문을 열고 집회를 하는 중인데 그 중에도 청진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