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성결교회(복부정성결교회, 함경남도 함흥부 복부정 1정목 101번지)는 1924년 동양선교회가 함경남도 함흥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하고 3월에 철원교회를 담임하던 김하석 전도사를 함흥으로 파송하고 조선식 가옥을 매수하여 6월 1일부터 예배를 드림으로 설립되었다.
이 일에 협력하기 위해 어포리교회에서 사역하던 유진심 여전도사도 파송하였다.
함흥교회는 1924년 9월 3일〜7일까지 ‘장막전도회’를 열었는데 믿기로 결심한 자가 105명이나 되었다. 1928년 4월부터 매삭 5원씩 자급(목회자 사례)을 실시하였고, 4월 8일〜11일까지는 김응조 감리목사의 인도로 특별집회를 개최하고 매일 새벽기도회와 저녁강연회로 모이는 중 신자들의 심령에 큰 은혜가 임하였으며 성례식(세례 8인, 학습문답 2인)과 최초의 집사(6인) 임명이 있었다.
또한 5월 6일 주일에는 유년주일학교 남녀 19인의 제1회 수업식이 거행되었고 70~80명의 유년주일학생들의 야외집회가 성천강 만세교 건너편 백사장에서 있었다.
9월 ‘함경도지역의 수해로 인해 함흥교회도 침수되어 주택이 파괴되었으므로 남녀전도사와 그 가족은 외정(外庭, 외부 장소)에서 한둔(寒屯, 춥게 머무는)을 하였다.
이에 동양선교회는「활천」을 통해 전국교회들의 기도와 물질로 힘 있는 대로 동정하여 주기를 알렸고 이를 통해 침수되었던 예배당과 남녀전도사의 주택을 수리하였다.
함흥교회는 수해 피해를 입은 중에도 9월 24일 오후 8시 유년주일학교의 특별집회를 열어 모든 소아들이 많은 은혜를 입었다.
10월 1일부터 5일까지 개최된 함남 ‘석유공업품 전람회’ 기간 중 밤마다 노방대전도회를 열고 7개소에서 2,000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전도지 6백여 매를 배부하였다.
11월 11일에는 추수감사회로 모여 주께 영광을 돌렸고 12월 25일 성탄예배의 헌금은 직원들이 함흥 성내의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29년에는 ‘성경암송부’를 만들어 교우들로 하여금 성경을 암송케 하였다. 5월 12일 주일은 ‘전조선 성결교회주일학교 진흥 주일’ 예배를 드렸고, 5월 19일에는 제1회 옥외 등산 예배 및 성서주일 예배로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성서략론」 500부를 노방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7월에는 리준수 전도사가 경성독립문교회로 이동하고 동경지방 강송수 목사가 함흥지방 감리목사대리 겸 함흥교회 담임목사를 부임하였다.
또한 동월 부인회를 조직하고 장래의 자급실시와 내외국선교사업과 거의 만호(萬戶)되는 함흥지역 불쌍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목적하고 매 주일 오후 재직 및 신자들이 총출동하여 300여 호에 복음을 전하였다.
1929년 7월에 예배당을 신축을 마치고 10월 16일〜20일까지 ‘함흥지방회 겸 심령 수양회’가 함흥교회당에서 열렸다.
제9회 함흥지방회에서 강송수 목사는 1931년 12월 현재 “신자 125인, 부인회원 60여 명, 주일 학생 290인”임을 보고하였다. 1934년 교회 명칭을 복부정교회로 변경하였고, 1월 29일〜2월 4일까지 리명직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다.
또한 함남지방회 ‘함남성경학교’가 복부정교회에서 운영되었다. 1936년 4월 강송수 목사의 뒤를 이어 조기성 목사가 부임하였다.
5월부터 10여 리 밖에 있는 ‘본궁’이라는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 부지를 준비해 주었다.
복부정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해방 이후 교회를 재건하여 크게 부흥되고 있음을 당시 북부교구장인 복부정교회 조기성 목사는 이용선 목사 편(「활천」, 1947년 10월호)에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