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남’은 1920년 함경북도 도청소재지가 되었고, 1931년 라남면이 라남읍으로 승격되었다.
라남성결교회(함경북도 경성군 라남읍 초뢰정 125) 설립은 1932년 2월 17일 웅기교회에서 개최된 청진지방회에서 ‘성진·라남·영안·무산·지나무도구·국자가’ 등 6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김광빈 전도사를 파송하여 8월 1일에 설립 예배를 드렸다.
1933년 8월 3∼6일 조승각·전서국·문기선·장리초 전도사는 ‘회개’, ‘구원’, ‘인생의 참 자유’, ‘신창조’등을 주제로 매일 밤 돌아가며 설교하였는데 청중들은 30인∼60인까지 회집되었고 결심자는 총 16인이었다.
9월 26일∼10월 1일까지 김영범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고 청신기도회, 성경 공부, 전도회를 한 결과 많은 은혜를 받았다. 11월에는 김영욱 전도부인이 부임하였다.
1934년 리성순이 주임전도사로 부임하였다. 6월 26∼28일 포항동교회 전서국 전도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는데 일반에게 큰 은혜가 임하여 중생자가 41인, 성결자가 37인, 신결심자가 66인이나 되었다.
라남교회는 창립 이래 3년 동안이나 예배당이 없어 많은 곤란를 당하였으나 신자 일동이 주야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응답하셔서 1935년 10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12월 25일 성탄절부터 예배를 드렸다.
1936년『활천』1월호에는 25명의 라남교회 신자명부가 소개되고 있다. 7월 15일∼8월 2일까지 ‘북부지방회 청진구역 하기전도회’가 7월 15일∼8월 2일까지 회령교회·운연교회·청진교회·신암동교회·포항동교회·라남교회가 서로 지역을 바꾸어 전도한 결과 결심자는 218인에 달하였다.
1937년 4월 1일부터 7일 동안 조승각 목사의 인도하에 부흥회를 열고 매일 세 번씩 모이는 중 성신의 불길은 맹렬하게 역사하여 통회자복하고 감사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였고 신결심자는 48명이나 되었는데 집회를 마친 첫 주일에 결심자 가운데 10여 명이 예배에 출석하여 주께 영광을 돌렸다.
11월 28일부터 1주일간 기도회로 모여 많은 은혜를 받았고, 28일 주일에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는데 감사헌금이 70여 원이었다.
12월 28일∼1월 3일까지 강송 순회 이사를 청하여 신년성회로 모였는데 매일 무한한 은혜를 받았으며, 특히 1월 2일 주일에는 제1회 연회에서 안수받은 리성순 목사의 취임예식이 있었는데 인근 각 교회에서 다수가 회집하여 성대한 예식을 거행하고 3일 오전에는 사무년회를 진행하였다.
김영욱 전도부인은 1938년 10월부로 청진교회로 전근되었다.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1939년『활천』1월호에는 장년 62명의 교인명부가 기록되어있다.
3월 27일∼4월 2일까지 1주일간 김진문 목사의 인도로 매일 삼차씩 집회를 한 결과 성신의 맹렬한 역사가 나타나 중생자와 성결자 다수이었고 신결심자가 57인이나 되어 주께 영광을 돌렸다. 8월 9일∼12일까지 함북지방회가 라남교회에서 개최되었다.
1940년 3월 18일∼24일까지 1주일간 조승각 목사의 인도로 심령부흥회를 열고 1일 3차씩 회집하였는데 시간마다 통회 자복하는 자가 회개금과 물질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이 많았으며 신결심자가 58인이나 되었고, 예배당 건축헌금이 4,200여 원이나 되어 주께 영광을 돌렸다.
11월 13일∼19일까지는 유년주일학생부흥회를 열었는데 마지막 저녁에는 소아간담회를 열고 소아들의 찬미와 재미스러운 이야기도 듣고 다과회까지 있었다.
또한 12월 첫 주일에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는데, 감사헌금이 200여 원이나 되어 주께 영광을 돌렸다. 라남성결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