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청성결교회(함경남도 북청군 양가면 중리 1147)는 평산교회 신자들이 열심히 전도한 열매로 설립되었다.
동양선교회는 평산교회에서 사역하던 김영범 전도사를 신북청 지역에 파송하여 평가(平家) 6간을 구입하여 수리하고 1929년 5월 5일에 신자와 구도자를 합하여 33명이 모여 창립예배를 드렸다.
당일 밤에는 주순진·김형식·맹성국 전도사를 청하여 ‘대거전도회’를 개최하여 330여 명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 전도회를 통해 37명의 결심자를 얻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교역자와 신자들이 함께 310여 가정을 방문하여 전도지를 배포하는 동시에 노상행인(路上行人)에게까지 전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930년 2월 9일〜12일까지 강송수 목사의 인도 하에서 부흥회를 개최하고 일반이 각각 그 믿음의 분량대로 은혜를 받은 결과 중생자가 7인이고 교회를 위하여 몸 바치기로 작정한 이도 있으며 리병항이란 노인의 학습예식까지 있었다.
8월 3일 오후 2시에는 강송수 목사의 인도하에 신축한 예배당 헌당식을 거행하고, 4일간 특별집회를 열고 청신기도회와 밤 구령회로 모이는 가운데 일반신자들의 심령이 부흥되는 동시에 믿기로 결심한 자가 31명이나 되었으며, 우삽비라와 김상영의 두 자매는 경종을 사서 교회에 바쳤으며 동시에 남대천에서 2인에게 세례식을 거행하였다.
11월 2일〜5일까지 김진문 전도사와 주임교역자의 인도하에 대거전도회를 열고 매일 밤 8〜90명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결심자 30명을 얻었으며 오전에는 노방과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전도지를 배포하였다.
1931년 11월 16일〜20일까지 ‘함흥지방회 및 심령수양회’가 신북청교회에서 열렸다. 강송수 목사와 리건 목사의 인도하에서 매 집회에 150명〜200명 이상이 회집하여 열심히 은혜를 갈구하는 중 중생과 성결의 은혜를 받은 이가 많았으며 그 은혜 받은 자 중에서 십일조 바치기로 작정한 이가 24명이며 신결심자가 40여 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13인은 계속 출석 중 전가 귀도한 가정이 4, 5가정이나 되었다.
신북청교회는 1931년 12월말 당시 “부인회의 구령열(2개월에 1차씩 정식 전도회 개최), 최금진 씨의 열성, 풍금 산일, 신자 30인, 주일학생 다수, 교회부흥 중”이라고 지방회에 보고하였다.
1933년 5월 5일〜8일까지 박현명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8월 21일〜24일까지 김종인 전도사를 청하여 특별집회를 열고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한의우 집사는 교회 종을 사기 위해 8환을 헌금하였고 손옥화 전도부인은 자기가 매월 받는 집세를 받지 않고 그 돈을 모아 사택을 짓기로 하였다.
1934년 4월 2일〜3일 밤에 조한숙·김형식 두 전도사의 인도로 유년주일학교 특별집회를 열었다. 5월 5일에는 ‘교회창립 5주년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5월 17일 저녁〜22일까지 홍원교회 김종인 전도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고 일반은 큰 은혜를 받았다.
5월 27일 주일에는 ‘석재산’에서 야외예배를 거행하였다. 1938년 11월 30일 밤부터 5일간에 강송수 목사의 인도로 매일 세 번씩 모여 놀라운 은혜를 받는 중, 중생·성결의 은혜 받는 자도 다수이며 새결심자가 33명이며 집회 후 일반은 풍성한 은혜 받고 구령운동에 힘쓰므로 매주일 수명의 결심자를 얻는 중 교회는 날로 부흥하게 되었다.
신북청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