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성결교회(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 서리 179번지)는 함경도에 최초로 세워진 성결교회 모(母) 교회이다.
동양선교회는 1922년 4월에 곽재근·신관빈 두 전도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는데 처음에는 ‘북청극명학교’를 빌려 임시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5월 22일∼23일 이틀간 열린 대거전도의 결과로 구도자 90여명이 일어났고 6월 12일에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이때 20인이 출석하였다.
1922년 말 북청교회에는 장년신자 90여명, 주일학생 100여명이 출석하였다. 북청교회 신도들은 교회설립 초기부터 전도대를 조직하여 사방 30리 이내로 돌아다니며 각 촌에 열심히 전도한 결과 어포리교회(1922년 9월), 예원리교회(1922년 10월), 평산교회(1922년), 리망지리교회(1923년), 홍원교회(1925년 9월), 개운성교회(1928년) 등이 설립되었다.
이 같은 북청지방의 대 부흥소식은 멀리 구미까지 전해졌고 이 소식을 들은 크리스천들이 ‘북청지방 유지단’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북청지방을 위해 헌금하였다. 예배당이 협착함으로 수백 명의 신자가 많은 곤란을 당해 오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1923년 7월 24일에 예배당 신건축에 착수하여 64평의 조선식예배당을 건축하고 10월 21일에 곽재근 목사의 사회, 웃쓰 목사의 설교 후 헌당식을 거행하였는데 당일 3백여 명의 신자가 출석하였고 오후 7시에는 ‘헌당식 전도회’를 열었는데 7백여 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고 30여명이 새로 믿기로 작정하였다.
1924년 6월 15일 주일을 유년주일학생들을 위한 ‘꽃주일’로 지켰다. 1925년 1월 8일∼14일까지 ‘함남지방 성결교회 연합부흥회 겸 사경회’가 북청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박영순·정성운·김진문 등 남여전도사가 인도했다.
성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배당은 눈물바다로 변화된 동시에 성신의 불길로 모든 죄와 허물을 사르며 은혜의 소나기가 흡족하게 쏟아져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케 되었으며 그 결과로 확실히 신생한자가 20여명이나 되었다.
북청교회는 김진문 전도사를 청하여 1월 15일∼17일까지 ‘소아부흥회’를 열었는데 200여명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죄와 허물들을 주께 통회 자복함으로 용서함을 받고 큰 부흥의 불을 받은 결과 학생은 그 부모를 주 앞으로 인도하여 주께 영광을 돌렸다.
1927년 10월 3일∼11월 21일까지 ‘50일 청신기도회(새벽기도회)’를 열었는데 성신의 역사로 신자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회개하여 남의 물건을 도적해온 것이나 속인 것은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중 그 물건 주인은 무한한 감동을 받아 예수교회는 참 아름다운 종교라 하며 그 돈과 물건을 도로 돌리는 일도 있었으며 기타 전도와 기도에 나태한 것과 예배에 참석치 않은 것을 통회 자복하였다.
이 가운데 ‘우게득’이라는 자매는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실내전등 1개를 기부하였고 ‘한상익’이라는 형제는 예배당 옥외전등 1개를 기부하였다.
1928년 7월 28일(주일) 오후 3시에 남대천상류에서 김응조 목사의 주례로 남녀 7인에게 세례(침례)를 주었으며 밤에는 학습예식(5인)과 성찬식이 있어 일반이 주의 은혜를 뜨겁게 감사하였다.
8월 24일∼25일에는 5리 밖 ‘죽평리’라는 마을의 도령(都領)을 빌려 200명의 청중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 결심자 30여명을 얻었으며, 26일(주일)오후에는 유년주일학생들과 신자일동이 죽평리 천변 모래사장에서 ‘복송아주일’로 모여 많은 은혜를 받고 주께 영광을 돌렸다.
9월 3일∼7일까지는 김응조 목사의 인도 하에 부흥기도회를 열고 많은 은혜를 받는 중 60여원의 헌금으로 파괴된 강단 뒤 주초를 완전히 수리하였다.
1943년12월 29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재건되었고 1947년 10월 당시 “북청교회가 크게 부흥되고 있음”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