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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황해남도 연안교회 소개와 사진자료2022-07-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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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연안교회-2.jpg (410.2KB)연안교회-1.jpg (378.2KB)

연안성결교회는한보순목사가 수원에서 활동 중 연안지역의 교인들의 파송요구에 따라 앞서 청빙받은 서울체부동교회를 취소하고 연안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한보순목사의 아들인 한문근목사의 기억에 의하면 해방후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연안교회에서 사역을 하셨다고 한다. 6.26일에 교회중축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전쟁반발로 시작하지 못하였다. 한보순목사는 고향이 평양이며 자녀는 아들 3, 1명였다. 새거리에 지교회를 개척하였다고 하는데 바로 연백교회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보순목사(1896-1992)는 평양거리에서 한탁배로 유명하였고 그래서 한탁배목사로도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연안교회 교인들과 같이 교동도로 나와서 인천에서 금곡교회를, 안양성결교회, 고천교회 등을 세웠다.

  

술주정뱅이, 한보순은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이미 유아세례를 받고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당시에는 매우 귀한 운전면허를 가졌다. 당시 운전사는 멋진 제복을 입고 많은 수입이 보장된 아주 인기있는 직업인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술집에 드나들게 되었고, 술집에서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주량은 갈수록 늘어 아예 큰 그릇으로 마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탁배기라고 불렀다.

 

그가 술 때문에 아들을 잃은 일이 있다. 어느 날, 아들이 시름시름 앓더니 고열을 내며 피를 토하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아내는 그에게 얼른 가서 약을 지어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약을 사러 간 사람이 하루가 지나가도 오지를 않았다. 마침내 아들이 앓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만취되어 나타날 정도로 그는 구제불능의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한보순의 어머니는 날마다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고, 처는 아예 하나님께 그를 주의 종으로 써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후에는 장모까지 술주정뱅이 사위를 위해 기도하는데 동참했다. 16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여러 사람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강사는 이용도 목사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흥회에 한번만이라도 참석하자고 애원했다. 아무리 간청을 해도 듣지 않자 어머니는 술에 취해 있는 아들앞에 무릎을 꿇고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부흥회에 같이 가자고 애원했다. 마침내 마음이 움직여 딱 한번만 부흥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강사로부터 한번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는 인생, 개같이 살다가 개같이 죽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는 말씀이 한보순의 심령을 강하게 때렸다. 자신이 지금 개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면서 손을 들고 회개했다. ‘한탁백기는 결국 목사가 되었다. 아들 중 두 사람 한문근(큰 아들 한홍식목사 평촌이레성결교회 담임), 한홍석은 목사가 되어 부친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종으로 목회에 헌신하였다(5:18, 2:13).

 

  

 

연안교회 사진 1은 뒤엣 것이 사택과 교회임. 일본관사를 사택과 교회로 사용함. 한보순목사의 둘째 아들 한문근목사, 셋째 아들, , 뒤에 있는 건물은 우측이 사택이고 뒤의 큰 건물은 교회임

연안교회 사진2는 연안성결교 제1회 음악대(?) 맨 왼쪽의 트럼펫 부는 사람이 한보순목사의 둘째 아들 한문근목사, 풍금치는 사람은 셋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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